킴벌리의 친구를 구합니다
2023
류다연
이은솔의 인스타그램 계정이자 킴벌리의 탄생지인 프로필에는 다음 문구가 적혀있다. “몸 없이, 또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친구를 구하고 있다.”1 2020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해킹당한 후, 이은솔은 플랫폼 기업의 인프라와 경제 활동으로 체계화된 온라인 세계에 대한 분노와 의구심으로 양육한 가상 캐릭터 킴벌리를 세상에 내보냈다. 몸이 없는 킴벌리는 디지털 객체의 존재론에 대한 질문, 미디어 작가로서의 지속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에 대한 고민, 그리고 디지털 가치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교차로에서 작업하는 이은솔을 모두 수렴해 온 도상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상 세계 속 소소하고도 정의로운 협잡을 함께 공모할 친구를 찾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이은솔은 붉은색 머리의 킴벌리가 생존할 수 있는 거주 환경을 구축하는 작업을 이어 왔다. 이는 주로 전시, 행사, SNS,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협업해 영상 설치, 3D 조각, VR 게임 등의 매체로 출력됐다. 다소 파편적인 작업들을 엮는 것은 조금씩 모습을 모핑하며 등장하는 킴벌리다. 이은솔은 영화에 부활절 달걀을 숨겨 놓듯 각 작업에 킴벌리의 외형이나 배경 설정에 특정 요소를 다음 작품에 대한 힌트로 남기는데, 그의 초기 작업 중 〈Popcorn Prophet_trailer_001〉(2020)은, 제목이 암시하듯 킴벌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개괄적인 예언을 선사한다.
여태껏 킴벌리는 케팔로포어처럼 자신의 머리를 들고 다니는 성인(聖人)으로, 머리 이식 수술을 하는 카나베로 박사의 쇠사슬에 얽매인 실험 대상으로, 이은솔의 욕망을 주기적으로 섭취하고 토해 내는 디지털 트윈으로, 작가가 지정하는 구체적인 환경과 서사에 이끌려 다녔다. 디지털 객체로서의 의미와 실존주의적인 고민을 마구 뭉쳐 소조한 도상이었다. 하지만 위 트레일러 영상에서 킴벌리는 이더리움 블록체인으로 구동되는 커뮤니티 기반의 가상 세계인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 위를 떠돌며, 빼곡히 쌓여 있는 고층 빌딩 위에서 파란색 마법진을 그려 기괴한 형체의 또 다른 떠다니는 도상들을 소환한다. 이 장면은 킴벌리의 새로운 거주지를 개척하기 위해 타인의 개입과 협동을 환영하는 이은솔의 선포이며 킴벌리의 생존 방식이 전환할 것을 함축한다. 그 생존 로드맵은 킴벌리와 여러 캐릭터들이 옹기종기 모여 기업의 중앙 집권적 권력으로 구축된 웹2.0에 반하는 급진적인 형태의 공동체, 탈중앙화 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s, DAOs. 이하 다오)의 실험으로 형체를 드러내고 있다.
현 온라인 사회는 각종 광고 기반의(ad-supported) 소셜 미디어가 주체권을 잡고 수동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테크 플랫폼 기업의 활동에 의거해 움직인다. 공통된 물리적인 조건들이 작용할 수 없는 이 디지털 환경에서 객관성이 부재하고 공유된 현실, 공동체적인 의식을 수립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서로에게서 고립되어 가는 사용자들은 소규모 단위의 커뮤니티로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디지털 주체성을 야금야금 되찾고 있다. 개인의 사회·문화 활동은 반사적(semi-private) 디지털 공간, 채팅방, 블록체인 커뮤니티, 디스코드 서버로 해산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에서 앞으로 커뮤니티 회원들이 직접 자금을 조달하고, 주체적인 소유와 관리가 체계적이고 유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화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이러한 조직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는 법률이 아닌 코딩으로 체계적 운영을 다스리는 다오가 주목받고 있다.
1“Kimberly lee. Bodiless, seeking friends for a second chance.” kimberlyleee_. Instagram. https://www.instagram.com/kimberlyleee_
가장 기본적으로 다오는 블록체인 기술의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을 적극 활용해 조직원들이 자원을 공유하고, 경제적 가치를 교환하고, 합작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디지털 거버넌스 인프라를 제안한다. 이를테면, 앞서 언급되었던 작품의 배경이 되는 디센트럴랜드는 사용자들이 자신만의 땅, 작품,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을 발행하고 소유하여 플레이를 이어가는 메타버스이며 다오 거버넌스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나아가 예술계에서는 이러한 온체인 조직화가 제안하는 분산된 거버넌스, 의사결정, 자금 마련을 두고 예술 창작, 제작, 유통의 한정적인 선택지들을 확장하고 작가와 작업을 둘러싼 생태계를 디지털 환경 안에서 새로운 협업과 상호의존성을 도출할 수 있는 예술적 매체로 다루고 있다.
킴벌리 다오는 이은솔과 그의 친구들로 구성됐는데, 그들은 예술가가 자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의 제약과 중앙집권적인 운영체제에 대한 불안에 근거한 매우 현실적인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보이는 세계와 숨겨진 세계 사이를 가로지르는 “오로라”2로 향하기 위해, 디지털 네트워크의 폐쇄적인 회로를 “해킹”하고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기 위한 목표를 두고 킴벌리를 일종의 매개체이자 운동수단으로 가정한 것이다. 이렇게 킴벌리와 친구들은 대안적인 기금 마련과 소셜 네트워킹에 근거한 창작 방식을 실험하기 위해 다오라는 프레임워크를 착안했다. 하지만 킴벌리 다오는 실질적으로는 다오를 개념적 참조점으로 둔 대안적인 예술 커뮤니티 활동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블록체인에 스마트 컨트랙트를 발행하지 않은 상태일뿐더러 공유된 데이터베이스나 공동 금고 개설,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과 지분율 분배의 체계화, 투표 방식의 표준화 등 기술적 토대 위 거버넌스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논의와 시행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은솔은 킴벌리 다오가 아직은 실험 단계에 있다는 점을 보다 명확히하고 온체인 상에서 운용되는 다오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명칭에 ‘베타’와 ‘알파’를 붙여 단계별로 다오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2022년 5월 킴벌리 다오 베타는 킴벌리 다오의 신념을 밝히는 선언문과 〈 킴벌리와 친구들〉이라는 제목 아래 3D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그리고
파운데이션(Foundation)에 주조한 NFT 5점을 공개했다. 이어서 올해 4월에는 킴벌리 다오 알파로 ‘KIMMY 토큰’을 발행하고 첫 공식 모임을 영상으로 기록한 〈다 같이 신탁을 기다리세요 〉(2023)을 전시했다. 본 영상에서 설명하듯, 킴벌리 다오는 킴벌리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진 친구들, 즉 모임을 진행하는 A 그룹의 ‘킴벌리즈’(Kimberlys), 그리고 향후 킴벌리 다오의 활동을 지원할 서포터즈(Supporters)로 분류한다.
회의에 참여한 이은솔과 여섯 명의 킴벌리즈는 사운드 디자인, 한국 예술계 내 개발, 기획, 그래픽 디자인, 비평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이다. 그들은 합의된 토큰 수량을 에어드롭으로 수령한 후, 킴벌리의 시그니처 룩에서 성형된 버전으로 화면에 차례씩 나타나 자신의 재능과 관심사를 살려 어떤 불능감을 킴벌리를 통해 해소하고 싶은지 공유한다. 예를 들어, 광진전자는 이은솔과 꾸준한 협업 관계를 유지해 오며, 킴벌리의 3D 모델링 파일을 기반으로 몸이 없는 킴벌리에게 오프라인 환경을 점유할 수 있는 몸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응용하고 있다. 또한 1차 모임의 논의에서는 킴벌리즈가 정서적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 먼저 킴벌리 다오가 안정적으로 구동하고 생산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답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 질문들을 제시한다.
2 이은솔. 〈Midnight Sun Daze〉, 2022, 유니티 영상, 9분.
킴벌리 다오는 커뮤니티인가? 커뮤니티를 가장한 이은솔의 작업인가? 이은솔의 개입이나 허락 없이 킴벌리를 활용한 킴벌리즈의 창작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킴벌리에 대한 ‘애정’인가? 기존 체제를 해킹하고자 하는 분노적인 태도만으로 충분한가? 킴벌리라는 도상만으로 개인 작업에서 출발한 서사와 맥락이 여러 이들과 공유되는 세계관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확장적인 세계구축과 자율적인 창작 시스템이 자리 잡기 위해 저작권과 수익의 배분은 어떻게 체계화할 수 있는가? 실제 자본이 유입되기 전까지 다오 활동에 참여해 얻는 (비)물질적인 보상과 인센티브가 부재한 상황에 킴벌리즈의 진심 어린 의사결정이 가능한가? 베타, 알파의 단계를 거치면 킴벌리 다오가 다오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현재 인공지능 기술이 도래하고 있는 디지털 지평 위 예술이 향한 미래에 대한 논의에 포괄된다. 특히, 홀리 헌든(Holly Herndon)과 그의 협업자 매튜 드라이허스트(Matthew Dryhurst)가 제안하는 “무한한 미디어”(infinite media)라는 개념과 상통한다. 이 개념은 미래 예술이 “누구든지 타인의 작업, 재능 및 특성을 편집하거나 각색하거나 또는 변형”할 수 있을 매체로 발전할 것을 주장하며,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뉴 미디어는 “스포닝”(spawning, 게임 내 캐릭터나 아이템이 특정 위치에 재생성되는 현상을 뜻하는 게임 용어)이라는 용어로 묘사한다.3 이는 음악에서의 샘플링이나 시각예술에서의 콜라주를 너머, 인공지능이 학습 데이터를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이 아닌 해당 데이터의 핵심적인 스타일, 분위기, 특성 등의 선천적인 정체성을 파악하고 유지하되 새로운 컨텐츠를 자동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예시로 헌든의 다오 및 AI 음성 생성 프로젝트 홀리 플러스(Holly+)4가 있다. 홀리 플러스는 어떠한 음성 파일이든 헌든의 목소리로 변환 및 출력하는 인공지능 음성 도구이다. 이 소프트웨어의 활용도와 개발에 대한 의사결정은 홀리 플러스 다오로 합의된다. 예술과 기술이 융합된 맥락에서 디지털 존재의 분산된 정체성에 대한 실험을 고려할 때, 킴벌리 다오 역시 이은솔에 의해 부여된 킴벌리의 정체성을 “포킹”하고, 다른 이들이 킴벌리를 “분양”하며 원작자와의 창작에서 독립된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생성하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를 현실로 이끌어 오기 위해서는 많은 상상력, 노동력, 기술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친구를 사귀고 킴벌리즈를 모집하고 공동체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킴벌리 다오는 무한한 미디어의 필연적인 예술적 연습이자 행위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이은솔은 킴벌리와 함께 주문을 외워 픽셀로 직조된 하늘에 빛나는 마법진을 그리고, 오로라로 여정하는 킴벌리에 다른 이들이 승차할 수 있는 포털을 곳곳에 열어 둘 것이다. 이 “마법”에 이끌리거나,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으로 그의 프로필에 우연적으로 도달하거나, 지인의 필연적인 소개로 킴벌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친구가 되어 보기를 바란다. 킴벌리즈가 향한 오로라는 언제나 당신과 같은 친구들이 모여 상상하는, 친구들만을 위한 놀이 공간일 테니까.
3 Weiner, Anna. “Holly Herndon's Infinite Art." The New Yorker, November 20, 2023.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3/11/20/holly-herndons-infinite-art.
4 이은솔은 킴벌리와 친구들에서 실제로 홀리 헌던의 목소리를 오픈 소스 AI 모델을 활용해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