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의 두족류, 오로라를 찾아서, 친구들과 합체!2022
허호정
존재론적 ‘얼굴’이 세계를 배회한다. 성-계급-(문화/)자본의 상징 일체를 잃은 이 얼굴은 언제나 친구를 찾는다. 친구들의 공동체, 공동체의 새 영토에서 국가와 국경은 사라진다. 현실 세계의 물리적인 조건을 벗어난 이들은 개인을 초극하여 상호작용하며, 그 결과를 공정하게 분배한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공상과학도 아니다. 그것은 작가 이은솔이 그의 동료들과 실제 실험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사회적 비전이다. 이은솔의 신작 〈Midnight Sun Daze〉(2022)는 불이 꺼지지 않는 세계, 백야에 놓인 ‘킴벌리’가 맞닥뜨린 현재이며, 킴벌리를 매개로 다른 차원에 접속하는 이은솔의 현실을 다룬다.
우선, 이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킴벌리(Kimberly Lee)’를 소개해야 하겠다. 킴벌리는 작가가 단지 서사를 만들기 위해 동원한 캐릭터가 아니고, 순전히 가공된 창조물도 아니다. 몇 해 전, 이은솔은 자신의 개인 SNS 계정을 해킹 당했다. 당시 해커는 계정 이름을 ‘Kimberly’로 바꿔 놓았고, 계정주인 작가는 이 사실을 모른 채로 수 개월을 보냈는데 그동안 ‘킴벌리’는 그 자리에서 자기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난 후에도 이은솔은 킴벌리를 그대로 살려 두기로 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해킹 당한 SNS 계정(instagram, @kimberlyleee_) 자체를 작업의 터전으로 삼고, 이은솔이 접속한 ‘킴벌리’는 활성화된 온라인 생태계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SNS 계정이 사고 팔 수 있는 소비재가 된 것이 현실이라지만, 둘은 소유에 의한 귀속 관계를 취하지 않는다. 대신, 이은솔은 현실의 확장이자 동시에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갖는 자율적 체계를 존중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평행세계의 인물로서 킴벌리를 마주한다.
작가는 스스로를 소개하며 “킴벌리의 존재를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일련의 프로젝트들을 계속하여 생산하고 있고, 가상인물에 대한 이러한 의무감을 작업의 동기로 삼는다”1고 적어 왔다. 작업 자체가 킴벌리의 존재를 지속시키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체 킴벌리에게 기대되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는 킴벌리를 (공동) 양육하기 위한 조건들을 그토록 열심히 구축하는가? 서둘러 말하자면, 킴벌리는 평행세계의 유토피아적 실현을 위한 매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때의 ‘평행세계’는 웹 기반의 세계를 가리킨다.
89년 ‘World Wide Web’을 만든 최초의 물리학자들은 세계인의 공동 연구를 절실히 필요로 하며, 유무형의 관념과 지식을 공유재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웹에 걸린 애초의 기대가 그러했던 만큼 웹-유토피아에 관한 도취가 그토록 빠르게 번진 것도 예상 밖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웹 2.0과 3.0을 거치며 기대와 현실은 조금씩 양태를 달리하게 되었다. 웹 2.0은 웹 자체를 일반 대중에게 보급시키기를 가속화했고, 민주적이라 할 만한 접근권을 보장했다. 그러나 곧 독점적 대기업들이 주관하는 플랫폼, 브라우저는 정보의 유통을 통제하고 곳곳에 광고-소비주의 메커니즘을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선회한 차세대 웹은 AI 기술 및 빅데이터 처리 기술을 통한 사용자 맞춤형 정보 제공을 특징으로 하며, 특정 플랫폼을 경유하지 않고도 사용자 간 소통이 가능한 탈-중앙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려 한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이러한 웹 3.0의 도래를 지시한다. ‘블록체인’이란 중앙 집중적 서버를 거치지 않고 사용자 간(P2P: peer-to-peer) 상호 연결을 바탕으로 한 네트워킹을 말한다. 그 과정에서 상호연결의 유지, 보수를 위한 비용 발생은 특정한 경제 논리를 발생시키는데, 이때의 부담 및 보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암호화폐’다.
끊임없는 자본주의의 전횡으로 그 초기 목표와 전망을 잃어버린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의 꿈은 갱신되고 있다. 중앙집권화 된 유통망에 구멍을 뚫고, 다른 곳에서 공공을 위한 망을 형성하려는 꿈이 그것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긍정적 미래를 시험하는 자들은 여전히 유토피아를 그린다. 웹 3.0 시대의 낙관적 전망 아래서 킴벌리는 (1) 철저한 자유를 유지하며 (2) 무한히 스스로와 스스로의 가능성을 증식하는 한편 (3) 연대하는 공동체를 확보하려 한다. 〈Midnight Sun Daze〉는 이를 위한 킴벌리의 여정을 담은 짧은 영화다.
킴벌리의 특이점은 ‘머리만 있는’ 두족류(頭足類, 머리를 발 삼아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데에서 우선 기인한다.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킴벌리의 시각적 형상은 기이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포스트 휴먼 논의라 할 만한 것을 떠올리게 하면서 말이다. 〈Midnight Sun Daze〉에서 킴벌리의 대화 상대로 등장하기도 하는 카나베로 박사(Dr. Sergio Canavero, 1964~)는 이탈리아인 신경외과의로,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와 전신 마비된 뇌사 상태의 사람의 몸을 연결하려 한다.2 휴머니즘 이후의 인간 – 기계로부터, 기계에 의해, 기계를 향해 확장될 수 있는 인체는 ‘정상성’과 ‘완전성’의 이상을 현실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때, 그 자체 생명이자 이성적 판단 주체인 두족류 식 머리는 카나베로의 구상에 적절하게 부합할 것 같다. 그러나 킴벌리는 카나베로의 기대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보다 폭 넓은 자유를 택한다. 킴벌리는, ‘몸’과 더불어 개인을 결정짓는 여타 상징(성징, 계급적 징표 등)을 던져버리고, 숙주 없이도 살아남아 세계를 유영한다.
킴벌리는 결코 카나베로가 그리는 지도 안으로 흡수되지 않고, 자신의 ‘두족류’를 재생산–혹은 자기 복제–한다(따라서 빨간색 긴 머리를 휘날리는 영상 속 킴벌리는 하나인 동시에 셋이기도 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돌연변이-진화를 시도하며 두족류의 운명을 개진한다. 작가가 새 작업에서 방점을 두는 지점도 여기인데, 킴벌리는 이제 외부의 이질적 요소들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고, 변태를 통한 일신의 도약을 꿈꾼다. 킴벌리는 평범한 재료를 융합해 절대 원소를 얻어내는 마법처럼, 미지의 영혼들을 소환하여 새로운 자기를 만들려 한다. 〈Midnight Sun Daze〉는 연성술 및 연금술과 같은 마법을 이용하는 킴벌리의 여정을 서사적으로 배치한다.
전시장에 설치될 투 채널 스크린은 이를 공간적으로 표현한다. 영상 초반에는 하나의 공간을 출력하고 있던 스크린은 어느 지점부터 상∙하단으로 분리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상단 스크린에는 킴벌리의 여정이 그려지고, 하단 스크린에는 상단의 여정에서 불거져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일종의 파생물들이 나타난다. 킴벌리는 여정 중에 만난 타자의 영혼들을 불러내어 자기 자신의 변신에 사용하려 하는데, 그 시도는 거의 실패한다. 실패할 때마다, 하단 스크린에는 흔적이 남는다. 초월되지 못한 잔여 영혼들(귀신 혹은 악마들)이 아래에 남아 이상한 모양으로 증식하거나 엉뚱한 모양으로 서로 엉겨 붙기도 한다. 마침내 작업의 말미에 킴벌리가 마법에 성공할 때, 하단 스크린 속 쌓여 가던 실패의 증거들은 킴벌리의 부름에 공명하며 상단으로 솟아오른다. 이로써 아래쪽 스크린에 보이던 이미지들은 일순간 자취를 감추고, 상단 스크린 이미지는 이들이 킴벌리와 함께 두둥실 떠오른 모습으로 전환된다.
킴벌리는 타자들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할까? 킴벌리가 타자와 접촉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시 《그리드 아일랜드》(2022,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선보였던 〈Kimberly & Friends〉(2022)는 공동체 모델을 분명히 시사했다. 그 중에서도 ‘다오(DAO)’는 웹 3.0시대에 부상된 연대 모델로, 중앙 통제로부터 분산된 네트워크를 만들고 함께 운영하는 운명 공동체다. 공동체 성원들은 권력을 쥔 특별한 주체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서 자율적 의사 결정 체제에 따라 조직을 운영한다. 이들은 의사 결정을 위한 소통과 운영에 드는 비용을 함께 부담하며, 창출된 이익이나 몫은 각자가 조직에 기여하는 정도나 활동의 폭에 따라 투명하게 분배한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새 네트워크 안에서 (암호)화폐가 합리적으로 거래될 수 있는 여건을 꾸리고, 기존 자본주의의 수요/공급의 논리를 마냥 따르지 않고 새로 합의한 기준에 따라 가격 안정화에 나선다. 때로는 공통의 목적 – 안정적 예술 창작 기반 마련, 가상적/현실적 토지 재분배 등 – 을 위해 기금 마련을 시도하기도 한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실제 창작 활동 중인 이은솔의 친구들은, 킴벌리와 같이 평행세계의 공간을 점유하는 ‘친구들’ 캐릭터를 동원하여 함께 ‘다오’를 구상 중이다. 이들은 창작자 중심의 공간을 조성, 유지하며 예술 작업의 세계를 확대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으며, 이를 위해 창작물의 NFT 발행과 판매를 통해 기금 마련에 힘쓰고 있다.
물론, 웹 3.0이 항상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도 언제든지 자본의 논리가 끼어들 수 있으며, 실상 신자유주의 자장에서 벗어난 조직의 구성은 (제 아무리 가상 세계에서 시도된다 한들) 한낱 허상일지 모른다. 다만, 이은솔은 그 아스라한 꿈의 지평에 무효용, 무쓸모, 즉 反-교환가치의 예술을 세운다. 〈Midnight Sun Daze〉에서 신비주의, 마법의 외피를 두른 예술의 은유는 이러한 킴벌리의 전략을 집약한다. 화면 안에 등장하는 마법진 이미지나 오컬트 요소들은 예술의 은유일 따름이며, ‘악마’ 또는 ‘마녀’라 간주되는 음험한 형상 역시 웹 3.0의 아나키(anarchy)적 비전의 알레고리가 된다. 킴벌리와 친구들의 윤리는 배타적 소유 없는 분배와 검열 없는 배포 가능성에 정도될 뿐, 그 외 어떤 의례/주체/영역도 특권화하지 않는다.
끝으로, 〈Midnight Sun Daze〉에서 킴벌리를 지치지 않는 여정으로 이끌었던 서사적 장치 하나를 더 설명하려 한다. 꺼지지 않는 온라인 세계를 비유하며 설정된 배경, ‘백야’는 지구의 북쪽 끝 지방에서 관찰되는 계절 현상이다. 한편, 같은 지방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 자연 현상 중에는 ‘오로라(aurora)’가 있다. 그러나 백야가 있는 여름에는 오로라가 쉬이 발견되지 않는다. 때문에 ‘오로라를 찾는 백야’의 여행은 성공을 담보하지 않고, 킴벌리의 여정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백야의 두족류, 킴벌리는 친구들과 어깨를 맞대고 오로라를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 오로라가 아우라(aura)와 언어적 뿌리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과연 우연일까? 오로라는 이쪽 현실에서의 교환 가치를 등지고 저쪽 현실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수호한다. 그것은 투명한 스크린 너머 아주 이따금, 무지갯빛을 발한다.
1.
개인전 《KIMBERLY EXTRACT》(2021, SEMA 창고) 작가 소개 중에서 발췌.
2.
최준호, “전신마비 환자 머리에 뇌사자의 몸 이식한다”, 『중앙일보』 경제면, 입력 2018-02-07-02:00, 업데이트 2018-02-09-17:0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351702#home(최종접속 2022-10-10-21:34).
허호정(전시기획자)
문학과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미술사 서술과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전시를 만든다. 전시 ‹‹동물성 루프››(2019, 공-원) 공동 기획했고, ‹‹캐스트 CAST››(2021, d/p), ‹‹말괄량이 길들이기››(2022, 뮤지엄헤드) 등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