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없는 도상,혹은 머리 그 자체에 관해
2021
정시우 큐레이터
이탈리아의 패션 하우스 구찌(Gucci)의 2018년 F/W ≪Ready to Wear≫ 패션쇼는 여러모로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흑인 비하의 상징인 블랙페이스 발라클라바 터틀넥 스웨터로 촉발된 논란은 새로운 것, 멋진 것을 구찌라는 은어로 부르던 흑인 래퍼들조차 브랜드에서 등을 돌리게 했다.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인종차별 이슈로 다소 묻힌 감이 있지만, 쇼는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의 <사이보그 선언>(1985)을 모티프로 젠더리스, 포스트휴먼적 접근에서 드래곤이나, 악마의 뿔, 키클롭스의 눈과 같은 중세 신화의 여러 도상을 차용하고 있다. 특히, 케팔로포어(cephalophore)를 차용한 듯 모델이 본인을 복제한 가짜 머리를 들고 런웨이를 걷는 모습은 흥미로운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머리를 들고 있는’이라는 의미가 있는 케팔로포어 도상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1820)에 등장하는 목 없는 기수, 호스맨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아일랜드, 켈트 신화의 듀라한(Dullahan)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기독교 미술에 등장하는 케팔로포어 도상은 순교나 전쟁의 서사에 등장한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르는 유디트나 골리앗의 목을 들어 올리는 다윗, 메두사나 세례자 요한의 잘린 머리는 극적인 상황으로 말미암아 자주 호출되는 모티프이다. 프랑스의 수호성인인 생 드니(Saint-Denis)로 불리는 디오니시우스(Dionysius)는 케팔로포어의 대표적 인물로 기원후 3세기경 기독교 공인 이전의 프랑스 파리에서 포교 활동 중 붙잡혀 몽마르뜨 언덕에서 참수당한다. 형이 집행된 후, 분리된 몸이 떨어진 머리를 양손으로 들어올려 5km 남짓 걸어가 멈추었고, 이후 그 장소에 생 드니 성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기독교 도상의 전통에서 성인은 본인을 상징하는 천국의 열쇠나 성경책과 같은 물건, 혹은 순교의 상징으로 처형 도구나 신체 일부를 들고 있다. 예를 들어,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는 신체의 가죽이 벗겨져 순교했음으로 본인의 살가죽을 들고 있고, 성녀 아가다(Agatha)는 젖가슴이 잘려 순교했으므로 은쟁반에 담긴 잘린 가슴을 들고 있는데 디오니시우스는 참수당했으므로 본인의 머리를 들고 있다. 참수형은 동양과 서양 양쪽에서 시행되던 처형 방식이었기에 1866년 병인박해 때 ‘머리 자르는 산’으로 불리게 된 양화진의 절두산에서 천주교인을 집단으로 참수해 처형한 것이 반드시 종교박해의 상징만은 아니다. 케팔로포어 도상을 검색하다 보면 후광의 위치가 제각기 다른 것이 흥미롭다. 떨어져 나와 손에 들려진 머리에 후광이 비추기도 하고, 머리가 잘려져 남겨진 빈자리에 후광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영혼이 머무는 육신에서 머리와 몸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종교나 신화를 넘어 비교적 최근에는 <마징가> 시리즈에 등장하는 브로켄 백작과 같은 사이보그나, <기동전사 건담>의 지옹과 같은 로봇 등 일본의 애니메이션에서 분리된 머리의 모티프를 찾아볼 수 있다.
케팔로포어 도상은 그 기괴함과 성인이 죽음을 극복한 증거로써 많은 인기를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리된 신체라는 전제 조건을 생각하면 머리는 신체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머리가 몸에, 혹은 몸이 머리에 종속된다고 할 수 있을까? 양쪽이 단독으로 기능할 수 없기에 머리가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결국 도상, 아이콘으로 존재해야 한다. 최초의 아이콘이자 신의 형상은 ‘베로니카의 손수건’에 새겨진 예수의 얼굴이다. 성녀 베로니카는 예수의 얼굴을 손수건에 그대로 복제한 완전한 도상을 남겼고, 이는 이후 신의 아들을 묘사하는 다양한 방식의 최초이자 가장 원본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머리가 단독으로 형상적, 기능적 완전함을 가지는 도상은 천사의 일종인 케루빔(Cherubim)이 있다. 보통 아기의 머리에 날개가 달린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묘사되고 있는데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신에 가까운 존재이기에 어딘가에서 분리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완전하다.
이은솔 작가가 가상의 공간에 설정한 킴벌리 리(Kimberly Lee)는 신체 없이 머리로만 존재한다. 중력을 거슬러 부유하는 이 가상의 생명체는 작가가 제공하는 다양한 환경에 맞춰 분수나 욕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마법진을 그리고, 모종의 사건에 휘말리는 등 다중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설정된 공간 안에서 킴벌리는 독립적이고 완전한 존재이기에 작가는 킴벌리의 존재를 지속하고,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한 일련의 프로젝트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가상 공간에 있는 킴벌리가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라는 것은 사실 모순이다. 현실을 신체로 보고, 가상성을 머리로 본다면 킴벌리는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이은솔은 영상작업 <I want to be a cephalopod>(2021)에서 머리로만 존재하는 두 인물의 영혼과 신체에 관한 대화를 통해 킴벌리의 존재를 은유한다. 영상은 전통적인 영혼론과 원숭이를 대상으로 신체 이식술을 실험했던 로버트 조셉 화이트(Robert Joseph White)의 사례 등을 통해 신체와 머리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최근, 비트코인과 NFT 같은 무형자산에 높은 가치가 형성되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메타버스에서는 현실과 가상의 인프라를 동등하게 인식한다. 이러한 현상은 증명할 수 없는 존재에 신성을 부여해 현실화한 많은 역사적 사건의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킴벌리는 이제 다양한 플랫폼 환경에서 유연하게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최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머리 하나 무게의 가벼움에 관해 생각한다.